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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속으로

3년전 개성여행- 현화사칠층석탑,현화사비(삼족오가 숨어있는)


3년전 개성여행...

현화사칠층석탑 [玄化寺七層石塔]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현화리(북한의 행정구역상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 현화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높이는 8.64m이고, 현화사지에는 이 칠층석탑 외에 당간지주·비(碑)·석교 등이 있으며, 석등은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이전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화사는 1018년(현종 9)에 창건되었으며, 이 탑은 1020년(현종 11)에 건립된 것으로, 방형(方形) 평면이며 1단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되어 있는데, 고려석탑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기단부는 네 모서리와 기단부 각 면의 한가운데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돌 사이에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들을 벽돌처럼 쌓아 만들었다.
기둥돌 위에는 세 단의 받침을 가진 넓고 편평한 두꺼운 갑석(甲石)을 놓았는데, 기단부를 이렇게 처리한 것은 희귀한 예에 속한다.
기단부의 한 변은 3.9m에 이르고, 7층으로 된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법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매층의 탑신 밑에는 2단의 굄을 마련하였고, 탑신 네 모서리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새겨넣었다.
탑신의 각 면에는 연화형 안상(眼象)을 조식하고 이 안상 속에 석가상·사천왕상·나한상 등의 불상을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옥개석들은 전체적으로 얇은 편으로, 처마는 깊고 상하연(上下緣)은 양쪽으로 비교적 심하게 휘어올라 있다. 옥개석 밑에는 2단씩의 낮은 처마받침을 두었다.
정상에는 네모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있고, 그 위에 육각형의 석물을 올렸는데 앙화(仰花)나 보개(寶蓋)로 추정된다.
규모가 크고 전반적으로 수법이 굵직하면서도 세부에 있어서는 정교하며, 탑 전체와 각 부의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잡힌 걸작이다.








현화사비 [玄化寺碑]

* 또한 현화사비에 주목할점은 바로 삼족오... 이 사진에 담겨있을까요?? - 자세한 삼족오에 대한 것은 검색해보시길...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현화리(현재의 북한행정지명상 개성직할시 장풍군 월고리)에 있던 고려시대의 사적비.
1021년(현종 12) 건립. 비신높이 2.36m, 너비 1.28m.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40호. 옥개석·비신·귀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귀부의 조각은 생동감이 있으며, 이수의 장식적인 운룡문이나 비신 측면의 운룡문도 조각이 뛰어나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 국보 제59호)와 비슷한 양식이다.
비문에는 현종이 양친인 안종(安宗)과 헌정왕후(獻貞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현화사를 창건하였다는 창건연기와 절의 규모, 연중행사 및 국가에서 베푼 여러 가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뒷면에 추가하여 새긴 음기(陰記)에 의하면, 현종이 국가의 번영과 사직의 안녕함을 위하여 매년 4월 8일부터 사흘간 밤낮으로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베풀고,

양친의 명복을 위해서는 매년 7월 15일부터 사흘간 밤낮으로 미타불회(彌陀佛會)를 열었다고 한다.
또한, ≪대반야경 大般若經≫ 600권, 3본의 ≪화엄경 華嚴經≫·≪금광명경 金光明經≫·≪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 등의 인판(印板)을 새겨 이 절에 두었으며,
특별히 ‘반야경보(般若經寶)’라 부르며 길이 시방(十方)에 인시(印施)하게 하였다 한다.

비신 상단에 현종의 어필로 “靈鷲山大慈恩玄化寺之碑銘(영취산대자은현화사지비명)”이라 전(篆)하였는데, 이 사실은 ≪고려사≫에 보인다.
비신 앞면은 원비명(原碑銘)으로 주저(周佇)가 짓고 채충순(蔡忠順)이 썼으며, 뒷면은 채충순이 짓고 썼다.
주저와 채충순에 관해서는 ≪고려사≫ 열전에 전하며, 주저는 송나라 온주(溫州)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한 문인이다.
앞면의 글씨는 자경 2㎝의 구양순체(歐陽詢體)에 기초한 해서로, 매우 정결하다.

뒷면의 글씨는 자경 2㎝ 안팎의 행서로, 구양순의 해서필법을 지니면서 왕희지(王羲之)의 행서를 시도하여 어색한 면도 없지 않으나 개성을 살린 점은 돋보인다.